농부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커피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오늘날에도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커피를 생산한 농부만의 색깔, 아이덴티티를 커피에 입히기는 더욱 어렵지요. 하지만, 나리뇨에 있는 엘 나랑호 농장에서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농장은 자체 웻밀과 건조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점만 보면 콜롬비아의 일반적인 커피농장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농장 안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니, 농부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담긴 엘 나랑호 농장만의 특별한 비밀을 볼 수 있습니다. 엘 나랑호 농장을 운영하는 젊은 농장주 루이스 로드리게즈는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농장을 보며 좋은 커피를 생산하겠다는 열정을 엿볼 수 있었죠. 엘 나랑호 농장에는 카투라와 콜롬비아 등 흔하게 재배되는 품종 이외에도 마라고지페, 게이샤, 모카 등의 희귀 품종을 재배하고, 그의 농장에서 왕복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필란디아 에서 진행된 유기농법 워크숍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지식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루이스의 열정을 품종 선택, 농법과 함께 프로세싱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 농장 안 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오두막, 그 안에 엘 나랑호 농장의 비밀이 숨어 있었죠. 오두막의 정체는 허리 높이 만큼 땅을 파서 만든 반지하 파치먼트 건조장입니다. 실외의 건조 베드에 널은 파치먼트의 물기가 적당히 마르면 오두막 안으로 옮겨와서 비닐을 덮어 놓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파치먼트의 수분이 증발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고, 그에 따라 건조 과정에서 일어나는 발효 시간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루이스는 땅에 자갈을 깔아서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고, 파치먼트를 10분마다 뒤집어서 파치먼트가 상하지 않도록 공을 들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루이스의 워시드 커피는 건자두와 말린 베리의 플레이버, 과일을 담은 요거트 같은 산미, 약간의 시나몬 파우더를 뿌린 듯한 피니쉬가 느껴지는 차분한 커피입니다. 마치 조용하지만 큰 열정을 품고 있는 그의 캐릭터가 커피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로웠죠. 루이스는 가공 실험을 끝내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더 좋은 방향을 모색하며 수고를 들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루이스의 모습에 그가 다음에는 과연 어떤 커피를 만들어낼지 저절로 기대를 하게 됩니다.